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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을 받은 뒤 저를 가장 먼저 무너뜨린 건 통증도, 두려움도 아니었습니다.

체중계 위에 올라설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변에서는 "살이 좀 있어야 항암을 버틴다"는 말과 "비만이 암을 키운다"는 말이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직접 겪어보니, 이 두 말이 모순처럼 보여도 사실은 둘 다 맞습니다.

단, 조건이 다릅니다.

 

*체중 감소가 단순히 '살 빠지는 것'이 아닌 이유*

항암 치료가 시작되고 나서 저는 밥 냄새가 낯설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올라왔고, 입안이 헐어서 물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날이 있었습니다.

체중이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나마 살이 좀 빠지니 가볍긴 하다'고 위안 삼았는데, 그

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암 치료 중 체중 감소의 상당수는 단순한 식사량 감소가 아니라 암 악액질(Cancer Cachexi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암 악액질이란, 암세포가 만들어내는 염증 물질과 대사 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체지방은 물론 근육까지 빠르게 소모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먹어도 몸이 영양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소모해버리는 상태입니다.

저처럼 항암 부작용으로 식사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면, 이 악순환은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국립암센터에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6년간 위암 수술 환자 7,765명을 추적한 연구 결과는 저에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비만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기준으로 분석했더니, 저체중 환자의 암 사망률이 정상 체중 환자보다 무려 50%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과체중이나 경도 비만인 환자는 정상 체중보다 암 사망률이 약 15% 낮았고, BMI 28~30 사이의 중등도 비만 환자는 무려 42%나 낮았습니다

 

 

이른바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 불리는 현상입니다.

비만 역설이란, 일반적으로 비만이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특정 만성 질환이나 암 환자에서는 오히려 체중이 좀 더 나가는 쪽이 생존율이 높게 나타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리킵니다.

다만 이 데이터를 보고 "그럼 살 찌우면 되겠네"라고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중요한 건 지방 덩어리가 아니라 치료를 버텨낼 수 있는 근육량과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었습니다.

 

-저체중 환자: 정상 체중 대비 암 사망률 50% 높음

-과체중·경도 비만: 정상 체중 대비 암 사망률 약 15% 낮음

-중등도 비만(BMI 28~30): 정상 체중 대비 암 사망률 42% 낮음

 

단, 비만보다 근육량·영양 상태·대사 건강이 핵심 변수 또 한 가지, 체중의 절대 수치보다 비율이 더 중요합니다.

50kg인 사람이 5kg을 잃으면 체중의 10%가 사라지는 것이고,

100kg인 사람의 5kg 감소는 5%에 불과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원래 마른 체형이었던 저는 불과 몇 킬로그램 차이에도 피로감이 전혀 달랐습니다.

같은 숫자도 몸에 미치는 타격은 개인마다 완전히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요약:

암 치료 중 체중 감소는 암 악액질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이며,

국립암센터 16년 추적 연구에서도 저체중 환자의 사망률이 정상 체중보다 50% 높게 나타났다.

 

*비만 역설을 믿고 살을 찌워야 할까?*

제 판단은 달랐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저는 "잘 먹어야 산다"는 말을 수십 번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많이 먹어야 한다"거나 "살을 찌워야 한다"는 뜻으로 왜곡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막상 제가 가장 효과를 본 건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구성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이정아 교수에 따르면, 암 치료 중 체중 증가도 마냥 좋은 것이 아닙니다

특히 유방암이나 생식기암 환자의 경우,

체중 증가가 에스트로겐·인슐린·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암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에스트로겐(Estrogen)이란 여성 호르몬의 일종으로, 지방 조직에서도 생성되기 때문에 체지방이 과도하게 늘면 암 재발 위험을 높이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즉, 무작정 살을 찌우는 것은 위암 환자에게는 긍정적 데이터가 있더라도 모든 암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입맛이 없을 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세 끼를 억지로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소화가 잘 되는 단백질 위주 음식을 하루 다섯 번 이상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두부, 달걀, 생선, 살코기처럼 근육량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식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자, 체중 감소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근감소증(Sarcopenia)—여기서 근감소증이란 근육량과 근력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드는 상태로, 면역력 저하와 치료 부작용 심화로 이어지는 핵심 위험 요인입니다—을 막는 것이 체중계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운동에 대해서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걷기 10분도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체력 회복 속도를 바꿔놨습니다.

관절 가동 범위가 줄었거나 통증이 있다면 근력 운동보다 재활 중심의 스트레칭과 밴드 운동이 먼저입니다.

이후 몸이 허락하면 서서히 강도를 올리면 됩니다.

GLP-1 유사체(위고비, 젭바운드 등 식욕 억제 및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체중 감량을 돕는 약물)는 치료 중 소화기 부담이 이미 큰 상태에서 추가하면 탈수나 영양실조로 이어질 수 있어,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 기간 중 사용을 권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 후 결정해야 합니다.

비만 역설은 모든 암종에 적용되지 않으며, 체중의 숫자보다 근육량 유지와 대사 건강 관리가 암 치료 성적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암 치료 중에 살이 빠지면 무조건 나쁜 건가요?

A. 의도치 않은 체중 감소는 대부분 위험 신호로 봐야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체중이 빠질 때 동시에 피로감과 치료 부작용도 함께 심해졌습니다.

국립암센터 연구에서도 저체중 환자의 암 사망률이 정상 체중보다 50% 높았습니다.

왜 빠지는지 원인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Q. 과체중이나 비만이었다면 암 진단 후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하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항암 치료로 식사가 힘든 상황이라면 다이어트보다 현재 컨디션 안정화가 먼저입니다.

체중 감소가 없고 전신 상태가 안정적일 때, 급격한 칼로리 제한이 아닌 식단 구성 개선과 생활 습관 변화로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암 환자가 붉은 고기를 먹어도 되나요?

A. 과도한 섭취는 피해야 하지만, 무조건 금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붉은 고기에는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근육량 유지와 면역력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건 양과 조리 방식이며, 의료진과 상의해 본인의 암 종류와 치료 단계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암 환자도 위고비 같은 체중 감량 약을 써도 되나요?

A. 치료 중이거나 치료 직후라면 신중해야 합니다.

GLP-1 유사체는 식욕 억제와 위 배출 지연 효과가 있는데, 항암·방사선 치료로 이미 소화기가 힘든 상황에서 추가하면 탈수나 영양 결핍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치료가 완전히 끝나고 체력이 회복된 뒤,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 후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입맛이 없을 때 단백질을 어떻게 챙겨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한 끼를 억지로 늘리기보다 하루 5~6회로 나눠서 소량씩 먹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두부, 달걀찜, 흰살생선처럼 소화 부담이 적으면서 단백질 밀도가 높은 음식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합니다.

구강 통증이나 연하 곤란(삼킴 장애)이 있다면 의료진에게 반드시 알려 소화기 부작용 관리를 함께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암과 싸우는 동안 체중계 숫자에 일희일비했던 제가 결국 깨달은 것은,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변하는 이유라는 점입니다.

치료를 버텨낼 근육이 남아 있는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지, 오늘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는지.

그것들이 실제 싸움의 무기였습니다.

체중 감소가 진행 중이라면 다이어트는 잠시 내려놓고 원인 파악과 영양 유지를 먼저 챙기시길 권합니다.

반대로 체중이 안정적이고 비만 상태라면, 급격한 감량이 아닌 식단 구성 개선과 꾸준한 활동 습관으로 대사 건강을 회복하는 방향이 맞습니다.

어느 쪽이든 혼자 판단하기보다 임상 영양사, 담당 의료진과 함께 본인의 암 종류와 치료 단계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참고: 암케어티비, 국립암센터, 서울아산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