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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을 받던 날, 저는 그야말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항암 치료와 표적치료를 반복하면서 암세포가 내성을 키운다는 사실을 몸소 겪고 나서야, 의학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절실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수술과 방사선에서 시작해 AI 기반 신약 개발까지, 암 치료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쓰이고 있습니다.
수술 칼에서 면역항암제까지, 암치료 역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CAR-T 치료를 경험하기 전까지 저는 항암제가 당연히 오래전부터 있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찾아보니 화학 항암제, 즉 세포독성 항암제(cytotoxic chemotherapy)가 등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였습니다.
세포독성 항암제란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독성 물질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독일군이 사용한 겨자 가스가 백혈구를 급감시키는 것을 보고 혈액암에 응용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전까지 암 치료는 수술과 방사선이 전부였고, 전이암은 손쓸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1900년대 초에는 열을 이용한 치료도 있었습니다.
고열이 났던 환자의 암이 사라졌다는 사례를 근거로, 단독(erysipelas)이라는 피부 감염증을 유발하는 백신을 만들어 열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이른바 '콜리의 독소' 요법이 시도됐습니다.
재현성이 낮아 표준 치료로 자리잡지 못했지만, 면역을 통해 암을 잡겠다는 발상은 그때부터 이미 있었던 셈입니다.
전환점은 2000년대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표적항암제(targeted therapy)와 면역항암제(immunotherapy)가 등장하면서 치료 성적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표적항암제란 개인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분석해 그 특정 부위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약물입니다.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의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면역 억제 신호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폐암 4기의 국내 5년 생존율이 2010년대 초 5.5%에서 현재 12.9%대로 오른 것은 이 두 가지 치료법 덕분입니다

내성과 전이의 장벽, 개인 맞춤형 면역치료
제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고통이 아니라 '또 내성이 생겼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약이 처음엔 잘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 암세포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경험은 환자라면 누구나 압니다.
그 원인이 암세포 자체만이 아니라 암세포를 둘러싼 환경에 있다는 연구 결과는 그래서 더 와닿았습니다.
최근 10년간 두 가지 연구 주제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첫째는 암 줄기세포(cancer stem cell),
둘째는 종양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입니다.
암 줄기세포란 일반 항암제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발의 씨앗이 되는 세포 집단입니다.
1세대·2세대 항암제로 대부분의 암세포를 제거해도 이 줄기암 세포들은 오히려 항암 치료 이후에 증식하는 경향이 있어, 치료가 끝난 뒤 재발이 반복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관련 논문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약 154만 편에 달할 정도로 연구 열기가 뜨겁습니다.
종양 미세환경이란 암 덩어리 바깥을 감싸는 보호막 같은 세포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 구조를 말합니다.
세포외 기질이란 암세포 주변에 형성되는 비정상적인 조직 환경으로, 항암제가 암세포에 닿기 전에 이 장벽이 먼저 막아서는 역할을 합니다.
올해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 학술대회에서는 항암제 내성의 50%가 암세포 자체의 변이가 아니라 이 보호막에서 비롯된다는 발표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제약사들이 본격적으로 이 방어막을 허무는 물질 개발에 뛰어든 것도 올해부터입니다

지금까지 각광받는 미래 치료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암 줄기세포 표적 치료: 재발의 씨앗인 줄기암 세포를 직접 겨냥하는 약물 개발로, 베라스템(Verastem)이 올해 3월 임상 3상을 통과했습니다.
-종양 미세환경 정상화: 암 방어막을 허물어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에 제대로 도달하도록 돕는 병용 전략입니다.
-개인 맞춤형 면역 치료: 환자 본인의 조직을 배양해 약물 반응을 미리 확인하거나,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 암 백신으로 면역 세포를 교육시키는 방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3~400개 의원이 이 자가 암 백신 치료를 시행 중이며, 간암에서 수술 단독군 생존율 30% 대비 80%의 생존율을 보고한 임상 결과가 있습니다.
-AI 기반 신약 개발: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를 딥러닝으로 분석해 후보 물질 탐색 기간을 단축하고 임상 실패 확률을 낮추는 기술로,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30년까지 약 13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가 가장 현실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CAR-T 치료를 받을 때 고열과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ytokine release syndrome)이라는 부작용을 겪었는데,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이란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온몸에 염증 반응이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부작용 관리조차 지금은 훨씬 정밀해졌고, 앞으로 개인 맞춤 면역 치료가 보편화되면 이 부작용도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Ai 신약개발
차세대 항암 기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감정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솔직히 말해야 할 부분입니다.
CAR-T 세포치료(CAR-T cell therapy)란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해 암세포를 특이적으로 인식하도록 유전자를 재설계한 뒤 다시 몸에 넣는 치료입니다.
원리만 들으면 혁명처럼 들리지만, 국내에서 허가된 일부 CAR-T 치료제의 비용은 수억 원대로, 평범한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피터 아티아의 저서 『질병 해방』은 이제 의학이 급성기 질환 중심의 '의학 2.0' 시대를 넘어, 극도의 개인 맞춤으로 만성 질환을 다루는 '의학 3.0' 시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방향성 자체는 옳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맞춤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느냐입니다.
싱가포르에서 개발된 조직 배양 기반 항암제 감수성 검사나 일본의 수지상세포 암 백신이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없이는 접근성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신약 후보 물질 탐색 기간을 단축하고 임상 실패율을 낮추는 것은 분명 반가운 변화입니다.
멀티오믹스(multi-omics) 데이터란 유전체, 단백질체, 대사체 등 생물학적 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런 기술이 신약 개발에 적용되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비용이 줄어든 만큼 약값도 낮아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술의 화려한 성과 뒤에서 치료비 접근성 문제와 제도적 보완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암 정복'이라는 말은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CAR-T 세포치료는 어떤 암에 적용할 수 있나요?
A. 현재 CAR-T 치료는 주로 혈액암, 특히 특정 유형의 백혈병과 림프종에서 허가·적용되고 있습니다. 고형암에 대한 적용은 아직 임상 연구 단계가 많으며, 종양 미세환경이라는 보호막을 뚫는 것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고형암에서의 CAR-T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병용 요법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Q. 수지상세포 암 백신은 국내에서도 맞을 수 있나요?
A. 현재 일본에서는 수백 개 의원에서 시행 중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표준 치료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국내 업체들이 일본 기술의 라이선스 협상을 진행 중이며, 수년 내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도입 후에도 건강보험 급여 여부에 따라 실제 접근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종양 미세환경 치료제와 기존 항암제를 병용하면 효과가 더 좋아지나요?
A.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종양 미세환경이 만드는 방어막이 기존 항암제의 침투를 막는 원인이기 때문에, 이 장벽을 허무는 약물과 항암제를 함께 쓰면 치료 효과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연구가 임상 초기 단계에 있어, 실제 임상 적용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은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Q. AI 신약 개발이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A. AI가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에 진입하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모든 단계를 통과해 실제 허가에 이르는 데는 통상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AI는 후보 물질 탐색과 약물 반응 예측에서 시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관련 시장이 약 13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환자가 실제로 약을 처방받기까지는 규제 과학의 발전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Q. 개인 맞춤형 항암 치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A. 현재 국내에서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의 유전자 패널 검사를 통해 표적 돌연변이를 확인하고 맞춤 항암제를 선택하는 방식이 일부 급여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조직 배양 기반 항암제 감수성 검사는 아직 국내 도입 전이라 대형 대학병원 또는 전문 암 센터에서 담당 종양내과 전문의와 상의해 가능한 옵션을 확인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암 치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제가 직접 치료를 받아보면서 느낀 것은 기술만큼
'접근성'과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치료가 있는지조차 모르면 선택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암 줄기세포, 종양 미세환경, AI 신약 개발 등 지금 쏟아지는 연구들이 실제 환자의 병상 옆까지 닿으려면 기술 개발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이 글이 치료법을 찾고 계신 분들께 하나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의견 공유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유튜브 쀼닥터의 건강이야기, 유튜브 암에 미친 메디람, EBS건강, YTN사이언스 , 국립암센터 , 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
